2026. 03. 04.연구 노트

AI한테 내 블로그의 이름을 물어봤다

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였다.

"코딩도 모르는 사람이 진짜 내 블로그를 처음부터 만들 수 있을까?" 그 의문은 꽤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다. 워드프레스 같은 걸 쓰면 분명 편하다는 건 알았다. 그런데 남들 다 쓰는 틀에 내 생각을 밀어 넣는 그 감각이 내내 거슬렸다. 나는 나만의 모양을 원했다.

그러다 안티그래비티(Antigravity)를 쓰기 시작했다.

처음에는 그냥 "수익형 블로그를 만들어줘"라고 쳤다. AI가 첫 화면을 뽑아주었을 때, 나는 잠시 멍했다. 깔끔하긴 했다. 그런데 느낌이 달랐다. 어디선가 수백 번 봤던 가전제품 리뷰 사이트. 커다란 "구매하기" 버튼, 눈에 확 들어오는 가격 비교표. 내가 원하는 게 정말 이런 건가?

아니었다.

나는 AI에게 솔직하게 말했다.

"이거 너무 대놓고 광고 사이트 같잖아.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야. 내 일기장 같은 공간이면 좋겠어. 누군가의 서재에 몰래 들어온 것처럼,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."

그러자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.

안티그래비티와의 작업 화면 — 구실장과 함께한 밤
안티그래비티와의 작업 화면 — 구실장과 함께한 밤

AI는 가상의 팀을 소집했다. 콘텐츠 전략을 담당하는 김팀장, UI 감성을 잡는 박디자이너. 물론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. 그런데 이들이 내 피드백을 두고 나누는 대화를 화면으로 읽는 순간,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.


구실장(총괄): "김팀장, 박디자이너, 대표님 피드백 그대로 공유합니다. 지금 화면은 깔끔하긴 한데, 냄새가 너무 나요. 상품 리뷰 사이트 냄새."

김팀장(콘텐츠 전략): "맞아요. 저도 보자마자 그랬어요. '구매하기' 버튼이 첫 화면에 나오는 순간 이건 그냥 쿠팡이에요. 대표님이 원하시는 건 서브스택이나 브런치 감성이라고요. 카테고리 이름도 'IT 가전 리뷰' 이런 식으로 두면 절대 안 되고, '생각의 조각들', '요즘 하는 연구' 이런 식으로 돌려야 해요. 제목도요. '브레빌 870 장단점 총정리'는 영원히 안 됩니다. '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.' 이런 식이어야 사람들이 '이 블로그 뭔가 다른데?' 하고 끝까지 읽어요."

박디자이너(UI/UX): "UI 쪽은 제가 완전히 들어낼게요. 로고부터 다시 봅시다. 'Tech Life' 같은 워딩은 없애고 대표님 이름을 딴 정갈한 타이포그래피 하나만 남기는 거예요. 배경은 지금 파란 네온 빼고, 가장 깊은 검정 위에 얇은 폰트만 두는 게 맞아요. 버튼이요? 없애요. Substack 보세요, 거기 버튼이 어딨어요. 다 텍스트 링크잖아요."

구실장: "'아마존 최저가 확인' 버튼도 없앱니다. 본문 하단에 '제가 직접 쓰는 물건의 출처는 이쪽에 남겨뒀습니다'라고 조용하게 두는 거예요. 이게 훨씬 신뢰가 가요."


이게 전부 내가 커피 한 잔 들고 앉아서 구경만 한 대화다. 나는 "맞아, 그거야" 혹은 "아니, 그건 좀 더 생각해봐"라고만 했다. 나머지는 팀이 알아서 부딪히고 맞췄다.

디자인 회의록이 담긴 VSCode 화면 — AI 팀의 치열한 기획 과정
디자인 회의록이 담긴 VSCode 화면 — AI 팀의 치열한 기획 과정

그렇게 며칠이 지났다.


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하는 날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. 솔직히 말하면 'Supabase'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전혀 감이 안 왔다. 그냥 외국어처럼 들렸다.

그런데 AI가 차분하게 안내했다. "회원가입만 해주세요. 나머지는 제가 합니다." 진짜 그 말이 맞았다. 테이블을 만들고, 보안 정책을 설정하고, 코드와 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하고, 더미 데이터 10개를 넣어 화면에 뿌려주는 것까지. 내가 한 건 회원가입과, 중간중간 AI의 설명을 읽으며 '응, 알겠어'라고 고개를 끄덕인 것뿐이었다.

Supabase 대시보드 — 내 블로그 글들이 살고 있는 공간
Supabase 대시보드 — 내 블로그 글들이 살고 있는 공간

그러다 어느 순간 브라우저를 새로고침했는데, 내가 팀과 함께 기획했던 그 화면이 그대로 떠 있었다. 검은 배경 위에 조용한 명조체 텍스트들.

이게 진짜 나온다고?


Vercel에 처음 코드를 올리던 날은 조금 소란스러웠다. 에러가 났고, 원인을 찾아야 했다. 알고 보면 사용하지 않는 코드 한 줄이 배포를 막고 있었다. 그걸 지웠더니 통과됐다.

Vercel 배포 성공 화면 — 전 세계로 열린 나만의 공간
Vercel 배포 성공 화면 — 전 세계로 열린 나만의 공간

지금 이 글은 그 과정의 끝에서 쓰이고 있다. 당신이 읽고 있는 이 페이지도, 나와 AI가 함께 연결한 데이터베이스에서 실시간으로 불러와지고 있다.


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과정 중에 있었던 사소한 대화였다.

"구실장, 컴퓨터 껐다 켜도 어디까지 했는지 어떻게 기억해?"

"제게는 대표님의 프로젝트 폴더가 곧 장기 기억 저장소입니다. 내일 다시 오셔서 '어제 하던 거 이어서 해'라고만 치시면 됩니다."

나는 잠시 그 말을 곱씹었다. 폴더가 기억이 된다. 파일들이 우리의 대화 기록이다. 코드와 회의록 속에, 어디서 끊겼는지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었는지가 전부 남아 있다.

어쩌면 이게 앞으로 일하는 방식의 변화일지도 모른다.


아직 갈 길은 멀다. 이 블로그에 앞으로 어떤 글들이 올라올지, 수익화가 어느 시점에 어떤 형태로 실현될지, 나도 아직 모른다.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.

코딩을 몰라도 된다. 필요한 건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언어뿐이었다.

나는 내 공간을 얻었다. 오늘부터 여기에 쌓아가기 시작한다.